TuneFragments

매체는 낭만을 실을 수 있나요?

By 김마카

음악을 즐기는 방식은 다양하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25년 기준으로는 스포티파이와 애플 뮤직, 타이달 등의 스트리밍 플랫폼이 음악을 듣는 가장 지배적인 위치에 있고, 그들이 음악을 즐기는 가장 큰 방법 중 하나로 자리잡은지 오래이다.

이러한 변동은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 낸다. 기존에는 음원 판매량으로 집계된 음반의 흥행 데이터가 이제는 음원 스트리밍 조회수로 대체되는 시대이다. 이제는 모두가 무선 이어폰을 끼고 스포티파이나 애플 뮤직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매우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15년 전만 해도 이런 것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모두가 MP3 손실 음원을 구매해서 다운로드 하는 것이 일상적이였다. 파일을 다운로드받아 재생 기기에 집어넣어 음악을 듣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였다. 이로부터 10년 전으로 돌아가기만 하여도 CD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카세트 테이프가 있었고, 그와 함께 LP도 공존하였다. 이 시류를 따라 음악을 접하게 되는 태도도 변화해 왔다.

이전까지는 물리적 매체를 구매함으로써 그들의 음악을 즐겼고, 컬렉션을 쌓아갔다. 이는 물리적 만족감을 동시에 줌과 동시에 우리가 그들의 음악에 일종의 리스펙트를 표하는 수단이 되었다. 지금은 조회수로 대체되어가고, 우리는 옛 유산들의 음악을 더욱 쉽게 접할수 있게 되어가며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 시대의 음악을 즐길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는 새로운 문화의 시류를 만들어냈다. 기존의 메인 매체였던 CD와 LP가 아티스트에 대한 굿즈가 되기도 하고, 과거의 역사와 같은 아티스트들을 추앙하는 새로운 신세대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시간 속에 잊혀졌던 아티스트들도 다시 함께 빛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제일 흥미로운 점은, CD와 LP는 항상 물리적 매체로써 가장 큰 위치를 여전히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의 작업물에 리스펙트를 표하는 가장 큰 수단으로써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작업물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그들과 유대하고 그들의 작업물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새로이 자리를 매김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음악을 즐기는 하나의 수단으로써의 CD와 LP는 하나의 의식이 되어가고 있다.

스트리밍으로써 좋았던 음악에 대한 경의로써 다시 구매한 작업물을 우리는 다시 펼쳐 굳이 구식의 미디어를 통해 다시 불편하게 듣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쉽게 설명할수는 없지만, 음악을 즐기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자 그들의 작업물에 경배를 올리는 일련의 행동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시대를 선도하는 스트리밍은 우리에게 시대가 잊혀지게 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재조명의 기회를 주어지게 했다. 디깅 문화로 대표되는 사람들의 새로운 음악을 향한 추구성이 편리한 음원의 창고인 스트리밍을 통하여 과거의 음악을 다시 발굴하고, 그들을 다시 우리의 입에 올려놓아 다시금 그들의 음악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류 속에서 두 이질적인 매체가 서로 같은 평행선을 달리며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오히려 신비하게도 과거를 비추어주는 돋보기의 역할을 새로운 매체가 하고 있고, 새로운 매체를 통해 소비되는 음악의 물리적 의식화에는 구시대의 매체가 임하고 있다.

결국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기술의 변화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하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감정과 생각, 시간의 흔적을 귀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반응한다. 스트리밍이든, LP든, 그저 방식만 다를 뿐 — 음악을 통해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언제나 같았다. 그리고 그 욕망이 바로 음악이 시대를 초월해 살아남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