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eFragments

사랑하는 앨범들에게 - Joy Division의 Unknown Pleasures

By 김마카

Unknown Pleasures, 이 앨범은 1970년대와 80년대의 중간 사이에서 태어난 한 앨범이다. 환락과 마약의 사이키델릭 록과 데이비드 보위와 같은 글램 락들 사이에서 태어난, 하나의 시대정신 같은 앨범이다.

앨범의 모든 요소들은 탄탄하게 채워져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선을 넘지 않고 절제되어 있다. 늘어지거나, 빠르거나, 혼란하지도 않다. 그저 묵직한 베이스라인이 주도하는 곡들 위에 토핑처럼 얹어지는 기타, 그리고 이안 커티스의 보컬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어째서인지 신이 난다. 처음 들어보면 아리송하게 들린다. 두번째로 들으면 조금은 신이 나고, 세번째로 들으면 이미 여기서부터는 어깨를 들썩이고 있을 것이다. 묵직한 베이스라인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그 순간부터 이 앨범의 가치는 다한것이다.

이안의 가사가 먼저인지, 아니면 곡이 먼저인지는 닭과 달걀같은 난제지만 별 상관할 바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음악적 테크닉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음악의 뜻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가사를 알아보거나 앨범의 유기성 등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편에 속한다. 이 앨범만의 세계관과 앨범의 의도를 파악하면, 거기서부터는 예술처럼 꿈보다 해몽의 영역인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만큼은 다르다. 사실 가사도 좋은 부분이지만, 이미 음악적 완성도에 의해 음악적인 뜻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전락한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앨범은 진짜로 가사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는 편에 속한다. 정말로, 알아보려고 한 적이 크게 없을 정도다.

우리가 슬린트를 높게 치는 것, BCNR과 윈드밀 씬을 높게 치는 것, 인터폴 등의 밴드를 높게 치는 것 모두 포스트-락적인 면모에서 시작한다. 이런 포스트 락들의 가장 중요한 점은 스포큰 워드인 것인가? 아니면 간단하지만 복잡하고 외우기 힘든 프레이즈인 것인가? 모두 포함되지만, 결국엔 듣다보면 이 모든 요소가 해체적인것처럼 느껴지지만, 전혀 해체적이지 않고 하나로 아직 뭉쳐있다는 것이다.

어찌 들으면 굉장히 모순적이고 장르에 대한 모욕으로써 들릴수 있다. 해체주의적인 장르인 포스트락에 전혀 해체적이지 않다고 하다니. 하지만 들어보라, 기존의 송폼을 깨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레이어링이고 하나의 거대한 빌드업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면모에서 포스트락은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닌가. 아방가르드하면서도 대중성을 놓치지 않아서 그들이 지금까지 회자되는것이 아닌가.

그런 면모에서, 조이 디비전은 이미 차갑게 짜여진 드럼비트와 베이스의 프레이즈에서 더이상 여길 쪼갤 방법이 없는듯한 차가움을 연출해낸다. 아주 최소한도의 음악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대놓고 티가 나지만 오히려 이것 때문에 단단한 베이스라인이 더욱 자신감있게 마치 자랑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듯이 꼿꼿이 서 있는듯한 연출을 해내는 것이다. 이미 여기서부터 미니멀리즘하지만 포스트락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것이다. 더욱 이해하기 쉽지만, 그렇다고 구리지도 않고, 아주 명쾌하고 차갑고 감히 손댈수 없을듯한 얼음장같은 단단함이 바로 흥의 근원인 것이다.

이안은 이러한 음악에 마법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낼 줄 아는 사람이다. 이안은 평소 우울증을 앓았으며, 간질발작에 시달렸고, 언제 자신이 간질발작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과 너무 일찍 가장이 되어 딸 나탈리와 이미 흥미가 식어버린 전 아내와의 관계 사이에서 고민하고, 사랑이 아닌 하나의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임하게 된 것. 그것이 바로 이안의 짐이였다. 이안은 이러한 내용을 가사로써 풀어낸다. 깜빡이는 불빛들이 빠르게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스스로를 통제할수 없는 사람이 자유를 만끽하는 장소 내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줄타기의 음악성을 보유한 이안은 안타깝게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안은 이런 음악에 매달릴 줄 아는 카우보이였으며, 오히려 음악 속에 녹아들어 음악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차가운 음악성에 더해지는 이안의 거칠고 낮은 보컬은 하나의 악기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이안의 이야기 또한 그 음악처럼 음침하면서도 이안의 우울증처럼 양면성을 드러내며 자신의 보여줄 곳과 보여주지 말 곳을 동시에 지니며 우리에게 패러독스를 제시해주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들이 자신이 연기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안의 음악과 행동에 이 모든 것이 전부 녹아있다. 나는 이안의 목소리를 악기로 여기지만, 이안은 이 음악 위에 올라타는 카우보이로써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바로 내가 말이고 말이 내가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페이스를 절제되어있는 포스트락적인 구성 위에 올리는 것일 것이다.

이런 이유가 내가 이 앨범을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도저히 음악성으로 깔수가 없다. 모든게 우연찮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마치 일식과 월식처럼, 아무런 연유 없이 운좋음이 모두 맞물려 떨어져 하나의 명작을 만들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