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앨범들에게 - Squarepusher의 Ultravisitor
By 김마카
한 아티스트의 집대성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아티스트가 가장 잘하는 장르와 가장 잘하는 음악들을 한 곳에 모아두기만 해도 어느정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 앨범이 높은 평가를 받으려면 그 모든 음악들이 유기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앨범에 유기성이 존재할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이 특히 그렇다. 스퀘어푸셔의 드릴 앤 베이스, 어쿠스틱한 재즈, 브레이크코어가 아주 난잡하게 혼재해 있다. 항상 스퀘어푸셔는 자신의 앨범에 유기성을 두지 않았다. 이는 동료인 에이펙스 트윈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다. “Drunqks”만 들어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면에서 이 앨범은 가장 큰 무질서성을 가지는 앨범이다. 스퀘어푸셔 커리어 중에서도 1집과 함께 손꼽고 싶다. 스퀘어푸셔는 넓은 공간 안에 재즈 베이스를 먼저 두고, 그 위에 신디사이저를 덧칠한 뒤 복잡한 아멘 브레이크로 무치는 것에 통달한 뮤지션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런 시도에 조금씩 변주를 주며, 무질서하게 트랙을 던져주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을 찾아 들을수 있게 해준다.
스퀘어푸셔는 해당 앨범이야말로 자신의 집대성이며, 새로운 음악적 시도라고 여길 것이다. 왜냐하면 해당 앨범에서 가지는 새로운 형태 - 바로 관객과 라이브 - 그리고 어쿠스틱과의 거대한 조화가 바로 그것이다.
편집증적인 신디사이저 비트가 주도하던 음악의 주도권은 어쿠스틱한 바이브에게 일부 넘어가고, 스퀘어푸셔의 공연은 음악적 요소가 된다. 공연은 항상 같을수 없고, 공연마다 공연의 무질서성과 랜덤함은 바로 그 공연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스퀘어푸셔는 이런 가치를 앨범에게 담고 싶었던 것인지, 앨범은 많은 부분이 라이브로 시연된 음원을 혼재하고 있다.
혼란한 이 공연들 속에서, 스퀘어푸셔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장르인 드릴 앤 베이스를 선보이고, 그 후에 침묵의 앰비언트로 일관하다 다시 한번 베이스를 위시로 한 어쿠스틱 연주가 또 다시 찾아왔다, 다시 전자음이 우리를 반긴다.
치밀하고 오밀조밀한 IDM 비트를 오히려 재즈에 이식했다고 말하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어쿠스틱 연주에서는 IDM 비트의 재질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오히려 IDM과 드릴 앤 베이스에서는 재즈의 풍미가 느껴진다. 서로가 서로를 무질서하게 교환하고 있는 이 앨범, 그것이 바로 이 앨범이 가지는 최고의 가치일 것이다.
스퀘어푸셔의 이후 커리어는 상당히 파격적이게도 드릴 앤 베이스에서 많이 벗어난, 어쿠스틱한 하우스 스타일의 앨범이나 덥스텝 등을 시도하며 여러 변화를 꾀하게 된다. 결국 드릴 앤 베이스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는 이를 두고 새로운 스타일의 실패라고 부른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모든 앨범은 이 Ultravisitor의 오밀조밀한 확장이자 연속이다. 장르로써의 융합적 시도를 처음 시도했던 앨범의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서 그는 후속 앨범에서도 꾸준히 실험을 시행했던 성실한 사람이였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그것이 바로 스퀘어푸셔의 현재 음악관에 여러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인듯 하다. 덕분에 덥스텝도 해보고, 찌르는 테크노 사운드를 드릴 앤 베이스에 접목해 나쁘지 않은 성과를 얻었다.
이런 면에서, 이 모든 시작점이자 기념비적인 Ultravisitor는 스퀘어푸셔에게, 혹은 우리 리스너에게 있어 굉장히 기념비적인 앨범이 되는 것이다.